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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3월 20일 (사순14일/사순2주 목 자) 성찬례 성서말씀

 

 

2014년 3월 20일 (사순14일/사순2주 목 자) 성찬례 성서말씀

 

예레 17:5-10 [깨우쳐주시는 말씀]

5 야훼가 하는 말이다.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
6 벌판에 자라난 덤불과 같아, 좋은 일 하나 볼 수 없으리라. 소금쩍이 일어나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 뙤약볕만이 내려 쬐는 사막에서 살리라.
7 그러나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8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개울가로 뿌리를 뻗어 아무리 볕이 따가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잎사귀는 무성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으리라.
9 사람의 마음은 천길 물 속이라, 아무도 알 수 없지만
10 이 야훼만은 그 마음을 꿰뚫어 보고 뱃속까지 환히 들여다본다. 그래서 누구나 그 행실을 따라 그 소행대로 갚아주리라.

 

시편 1

1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따라 가지 않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않으며 ◯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2 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3 그에게 안 될 일이 무엇이랴: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으니 ◯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제 철 따라 열매 맺으리.
4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5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6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 의인의 길은 주께서 보살피신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루가 16:19-31 [부자와 라자로]

19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20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21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22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23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25 아브라함은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27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28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네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본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 안에서 시작하셨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어,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사순 14일째입니다.

오늘 복음서를 읽으며 사후세계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얻었다고 생각하시면 주님께서 깊이 한숨을 쉬실 것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사랑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장면에서 그 식당이 세트가 아니고 실제 어딘가에 있는 식당일 것이니 그 식당의 위치와 메뉴와 가격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좀 한심한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실제 식당에서 촬영을 하는 일도 종종 있기 하지만 그럴 때에도 중요한 것은 식당 정보가 아니라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성서가 사실에 바탕을 둔 다해도 사실의 구체성 보다 중요한 것은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신앙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 신앙인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세상, 영계에 대한 비밀스런 정보가 아닙니다.
죽었다가 천국과 지옥을 보고 돌아왔다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말라고 오늘 복음서는 말씀합니다. 필요한 것은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는 일, 곧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받들어야 할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올바른 관계를 사는 일입니다.
올바른 관계의 근거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까요?
하느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우리가 계율을 지키고 봉헌을 바쳐서 그에 흡족하시면 우리에게 상당한 축복의 보상을 내리시는 분일까요?
하느님의 사랑은 그 분의 살아계심 자체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조건과 차별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사랑도 조건과 차별이 없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부자의 잘못은 세상의 기준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데에 부를 사용하는 데에 잘못이 있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왜 부자는 부자로서 행복한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왜 라자로의 불행은 불행으로서 당연한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개개인의 팔자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조건과 차별을 걸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행복할 권리가 없고 불행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찌 된 일입니까?
신앙의 눈을 뜨면 그래서 우리 현실은 감사와 사랑으로 밖에는 살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고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행복의 근거들을 최대한 나누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못 나눈다구요? 저도 남못지않게 돈이 없어서 그런 경우를 미리 생각해보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마음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인사를 나누면 됩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에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면 되지요.
저는 복음의 진리에 관한 말씀을 나눌 때 제일 행복하고 그 지식이 제일 많이 가진 것이어서 그것을 나누길 좋아합니다.
불행한 사람도 감사하고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을 소망하고 기대하십시오.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사랑에 감사하십시오.

불행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주님은 산상설교에서 역설적으로 말씀합니다. 불행한 사람은 자기에 갇혀 살 수 없습니다. 자신을 열고 도움을 청하고 세상에 관심을 열어야 합니다. 세상이 불행하다고 규정한 사람이 도리어 하느님을 가장 깊이 알게 됩니다. 물론 불행 그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불행하기를 축복하면 좋으시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의 불행은 역설적으로 괜찮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랑과 능력으로 갚아주실 일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해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기를 지키는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로서 배우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할 수 있을까요?
신앙적으로 죽고 부활하는 길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의 알에서 깨어나 감사와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날개를 얻는 일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느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삶, 곧 육적인 삶을 벗어나서 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 앞에,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 모두, 우리 서로는 조건과 차별없이 행복을 나누어야할 형제자매들입니다.
부자는 부자로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거지는 거지로 굶주리고 병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우리도 지옥의 불꽃 속에서 아브라함의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행복은 조건이 없고 차별이 없이 우리 모두에게 확실하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은총으로 살고 은총으로 행복합니다. 그것은 감사와 사랑, 헌신과 나눔으로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