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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3월 21일 (사순15일/ 사순2주 금) 성찬례 성서말씀

2014년 3월 21일 (사순15일/ 사순2주 금/ 자) 성찬례 성서말씀 / 춘분

토마스 크랜머(캔터베리대주교, 전례개혁자, 순교자, 1556년)

 

창세 37:3-4, 12-13, 17-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라고 해서 어느 아들보다도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장신구를 단 옷을 지어 입히곤 하였다.
4 이렇게 아버지가 유별나게 그만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형들은 미워서 정다운 말 한마디 건넬 생각이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떼에게 풀을 뜯기러 세겜으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일렀다. "얘야,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지 않느냐? 네가 갔다 와야 하겠다." 그가 대답하였다. "네, 가지요."

17 그가 대답하였다. "벌써 여기를 떠났다. 도다인으로 가자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도다인으로 찾아가 거기에서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18 형들은 멀리서 알아보고 그가 다다르기 전에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19 "야,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저 녀석을 죽여 아무 구덩이에나 처넣고는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그들의 손에서 그를 건져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고 하였다.
22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녀석을 이 빈 들에 있는 구덩이에 처넣고 손만은 대지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내어 아버지께로 되돌려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다다르자 그들은 요셉에게서 옷을 벗겼다. 그것은 장신구를 단 옷이었다.
24 그리고는 그를 잡아 구덩이에 처넣었는데 그 구덩이는 물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는데, 마침 길르앗으로부터 낙타를 몰고 오는 이스마엘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향고무와 유향과 몰약을 낙타에 싣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
26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그래도 우리 동기인데 그를 죽이고 그 피를 덮어버린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니?
27 그러니 그 애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버리고 우리는 손을 대지 말자. 아무래도 우리 동기요, 우리 혈육이 아니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28 그러는 동안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이십 냥에 팔아 넘겼다. 이스마엘 사람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시편 105:16-22

16 그 뒤에 주께서는 그 땅에 기근을 불러들이시고 ◯ 그들의 식량 지팡이를 부러뜨리셨다.
17 그러나 사람 하나를 먼저 보내셨으니 ◯ 곧,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이다.
18 요셉은 거기에서 발에 차꼬를 차고 ◯ 목에는 쇠칼을 쓰고 고생을 하였으나,
19 마침내 그의 예언은 이루어졌다. ◯ 주님의 말씀은 그가 진실됨을 증명해주었다.
20 왕은 사람을 보내어 그의 사슬을 풀어 주었으니 ◯ 여러 족속을 다스리는 자가 요셉을 놓아 주었다.
21 그리고 그에게 나라 일을 맡겨 ◯ 온 살림을 주관하게 하며,
22 신하들을 마음대로 교육하고 ◯ 원로들에게는 지혜를 가르치게 하였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마태 21:33-43, 45-46 (마르12:1-12, 루가 20:9-19)

33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7)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7)이사 5:1-2.
34 포도 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36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37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39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40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8)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8)시편 118:22-23.
43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45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46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기도> 사랑이신 하느님,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 안에서 시작하셨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어, 이 세상 사는 동안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사순 15일째입니다.

오늘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를 기념합니다. 우리 성공회는 성인을 공경하여 기념하지만, 천주교처럼 단일하고 엄격한 시성제도를 따로 가지지는 않습니다. 기도서에 모든 교회가 공경하는 성인들과 또 새로이 기념할 분들을 정하는 것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과 신앙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물론 모든 성인공경은 그 인물 자체가 아니라 그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찬미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성인은 우리와 같은 신앙인이므로 우리의 모본이 됩니다. 또 성인을 포함하여 우리 모든 신자는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상통의 관계에 있습니다.

 

토마스 크랜머 주교님은 성공회 사람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들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본분과 지성과 양심을 지키며 참된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크랜머 주교는 1553년 헨리8세와 캐서린의 혼인무효, 그리고 앤 불린과이 결혼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했습니다. 로마로부터 파문을 당하지만 1534년 헨리8세가 로마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잉글랜드교회로 정치적 독립을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 후의 여러 정치적 변동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크랜머 주교님은 신실함을 인정받으며 에드워드 6세(재위 1547-1553) 때에 잉글랜드의 교회개혁을 이끌게 됩니다. 크랜머 주교는 대륙의 종교개혁에 깊이 영향을 받았고 교회의 모든 진리는 오로지 성서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성서엔 교황에 대한 언급이 없는 반면 하느님을 섬기는 왕에 대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크랜머 주교님은 그래서 잉글랜드와 교회를 위해서는 먼 곳의 교황보다는 자국의 왕이야말로 하느님을 대리할 종이라고 보았습니다.

크랜머 주교의 교회개혁 업적은 1549년 성공회기도서(1552, 1559, 1662년)를 작성한 일, 1553년 42개 신앙조항 (39개 신앙조항)을 작성한 일등을 들 수 있습니다. 크랜머 주교님의 개혁적인 신학과 작업은 성공회에 너무나도 중요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첫째, 라틴어 미사 대신 모국어인 영어로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헨리 8세 때 이미 성서는 영어로 번역되었거니와 에드워드 6세 때 모든 크고 작은 예배는 모두 영어로 드리기 시작합니다.

 

둘째, 신자들이 좋은 설교를 듣고 성서를 체계적으로 읽음으로써 신앙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도서 정과표 대로 성서를 읽어나갈 때 일 년이면 대략 신약을 세 번, 구약의 주요내용을 한번 읽고 묵상할 수 있게끔 배열했습니다. 성서를 전체적, 쳬계적으로 읽고, 천주교와 달리 설교를 강조하는 전통은 성공회의 기풍이 되었습니다.

 

셋째, 예배를 단순화했습니다. 복잡다단한 로마교회의 중세기적 예배양식과 기도서들을 크랜머의 기도서는 핵심을 잡아 단순화해서 한 권에 집약해 놓았습니다.

 

넷째, 예배에 평신도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참여할 수 있길 원했습니다. 라틴어 미사를 폐지한 일은 구경꾼으로 ‘보는’ 예배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여덟 번 드리던 베네딕트 수도원의 기도를 줄여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두 번 드리도록 한 것은 신자들이 사제가 없어도 자신들끼리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다섯째, 미사(성찬례)의 성격을 그리스도의 희생을 번번이 재현하는 일이라는 천주교의 관점 대신 성서말씀대로 “단 한번 온전히 드려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일로 보았습니다. 사제의 축성으로 인한 실체변화보다도 회중이 함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가 더 중요한 것으로 강조했습니다.

 

종교개혁을 추진하던 왕 에드워드 6세가 1553년 16세의 나이로 죽자 왕위는 천주교 신자인 메리1세에게 돌아가고 크랜머 대주교는 체포되어 수감됩니다. 감옥에 갇혀 3년을 지내는 동안 크랜머 주교님은 혼란과 번민 속에 지냅니다. 화형의 두려움과 안전보장의 회유에 빠져 마침내 이전의 개혁조치를 철회하는데 동의한다는 문서에 여러 차례 서명하게 됩니다.

 

피의 여왕이란 별명의 메리1세는 크랜머 주교에게 반로마 교회개혁을 철회한다는 서명을 시키는데 성공하자 마지막 복수를 완성하려고 크랜머에게 스스로의 철회서명에 대해 설교를 하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이 설교가 모든 것을 뒤바꾸었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며 크랜머는 다시 깊은 회개를 하게 되고 순교를 각오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대에선 선 크랜머 주교는 설교 마지막에 자신이 한 개혁조치의 철회서명이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 단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잘못된 결정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곧 강단에서 끌어내려져 화형에 처해집니다. 1556년 3월 21일 토요일 정오 무렵 토마스 크랜머 주교님은 쇠사슬로 기둥에 묶였고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오른손을 뻗어 불길에 집어넣으며 울부짖습니다. “이 손이 죄를 지었소!” 몸이 불붙어 다 타버릴 때까지도 그는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가 될 때까지 뻗은 손을 불길에서 빼지 않았던 크랜머 주교의 최후는 당대 잉글랜드 그리스도인들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그때까지 남아있던 천주교에 대한 심정적인 동조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크랜머 주교님이 순교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지상 최선의 교회”로 여겨지는 우리 성공회의 성립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에 성전 뜰에서 이른바 성전정화를 벌이신 후에 그러한 일을 하는 권위에 대하여 대사제들과 논쟁 후에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가진 의미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보도록 해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원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죄값을 대신 치르신 일로서, 하느님께서 미리 짜놓으신 각본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마태오복음의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이 마치 자기 포도원의 소작인에게 도조를 받으러 왔다가 죽임을 당한 외아들과 같다고 예수님 스스로의 비유 말씀으로 전합니다.

 

복음이 개인의 영혼구원을 전하고, 개인의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예수님의 대속교리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아서, 살아서는 건강과 재산과 소원성취의 축복을 받고, 죽어서는 천당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일까요? 그래서 자신의 구원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그 어떤 합리와 상식도 거부하고 이기적 주장과 행위를 일삼아도 독실한 신앙으로 정당화되는 것일까요? 그런 믿음이 과연 그리스도교의 참된 믿음일까요? 주인에게 도조를 내지 않고 스스로의 몫으로 챙기려고 폭력과 살인을 일삼던 소작인들의 마음과 태도에 도리어 더 가깝지 않을까요?

 

진정한 구원은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여서, 하느님의 뜻이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그 하느님 나라를 먼저 맛보고 누리며, 그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는 일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 일을 위해 신자로 부름받아 사람을 낚은 어부가 되고, 그 일을 위해 신자들은 교회공동체로 성령에 의해 하나되어 예배하고 선교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세상을 향해 선포하면 우리 신자와 교회는 재산과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습니다. 신자가 되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은 그런 의미입니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42절)
예수님은 세상이 볼 때는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모퉁이의 머릿돌, 곧 주춧돌과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서도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43절)
우리가 이미 신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도조를 잘 내는 백성이 되는 일, 곧 신자로서 교회로서 마땅히 하느님나라를 위해 살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참된 신자이고, 교회일 수 있습니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45-46절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해주시리라 기대하는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로 알고 있는데 정작 예수님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 예수님을 무당인 양 생각한다면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아침에, 경건하게 기쁘게 드리는 이 성찬례에 너무 무거운 말씀이 되었지요? 그러나 저를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크랜머 주교님 덕분에 지키게 된 성서정과 복음말씀이 오늘 이런 말씀을 전하라고 정해져있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며 위로받으려는 믿음이 아니라, 마땅히 들어야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봉헌하는 믿음이 성공회의 신앙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주님의 임재는 우리가 현실의 삶을 고통스러워 하며 주님의 사랑과 진리 앞에 진실한 슬픔으로 깨어질 때 경험됩니다.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오른 손을 불태우며 우리에게 진실한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모본을 보여준 크랜머 주교님을 기억하며, 우리 자랑스런 성공회가 도조를 잘 내는 백성처럼 참된 교회외 신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