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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강론

2013년 9월 10일 (연중23주간 화) 성찬례 설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시편은 참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 영혼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강조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성서가 영혼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육체와 분리되어 불멸하는 실체가 따로 있고 그 영혼만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에서 그런 생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경,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혼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살아있는 통짜의 인간, 몸과 마음과 정신 모두를 포함한 인간성 전체를 말합니다.

 

오늘의 본기도에서 표현한대로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영혼이 스스로 불멸하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영원한 차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영원하다는 것은 실체로 변치않고 오래오래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영원은 우주 안에 없습니다.

모든 실체는 시공간속에서 변하고 변합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말하는 영원은 관계의 신실함, 절대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다른 신앙적인 표현으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억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덧없이 사라지는 존재를 벗어나 의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하여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생명을 허락받아 살게 된 것, 그리고 창조주를 기억하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살피는 일만해도 감사한 일인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놀라운 신비를 허락받았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게 된 일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확인하고 자연을 다스릴 권한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자연과의 관계도 때로 문제가 되지만 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가장 깊은 의미에서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11 여러분은 세속적인 육체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형식이 아닌 진정한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앞에서 나 자신을 규정하고 내세우는 내용인 “에고”곧 자기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이제는 세속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의 기준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세례를 받은 이들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이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은 더 이상 신자들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마치 죽은 사람을 더 이상 어쩌지 못하듯이. 세례를 받은 이들은 하느님께 대하여는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이들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서 새로운 관계를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의무감 때문도 아니고 과시하기 위한 기도도 아닙니다. 기도의 결과로 중요한 결정을 하십니다. 제자들을 불러 그 가운데 열 두 사도를 세우십니다.

제자와 사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서만 보면 제자들 중에서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군중이 모두 제자인 것은 아니지요. 모든 제자가 사도인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안고 그 해결을 위해 예수님께 몰려온 이들은 군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하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해결을 위해서 따릅니다. 우리 모두도 처음에도 군중의 수준으로 시작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는 깊이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주시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으면 예수님을 따라 온 군중이 되는 것이죠. 애초에 예수님을 불신해서 찾지도 않은 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은 군중 가운데서 제자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셈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 나선 이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일 중심의 인생살이를 넘어서서 새로운 차원의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이라는 꿈을 가지고 그 차원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냥 대충 살아가는 삶이 아니고 모든 경우에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랑과 지혜를 얻어 살아가는 완전한 삶의 꿈입니다. 물론 그 꿈의 실현은 제자로서의 자기 수행의 결과만으로는 좌절되고 오로지 “성령강림”이라는 은총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서 따로 사도를 세우십니다. 이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 제자들보다 사도들이 더 높은 것일까요? 그래서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면 일반 신자들보다 사제들이 더 높고, 사제들보다 주교가 더 높은 것일까요? 우리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의미가 그런 서열구조를 가지고 있다는데 핵심이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루가복음서에서 사도들의 숫자를 12명으로 삼은 일,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가리옷 유다의 배반 후에 공동체가 즉시 마티아를 새로운 사도로 채워 넣은 일은 사도들의 의미를 특별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완성된 새 이스라엘, 곧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표지가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나라에도 서열구조가 존재한다는 따위의 의미가 아닙니다. 사도들의 원어는 그리스어로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의 아포스톨로스(apostolos)에서 유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택한 12제자인 사도들의 사명은 예수님의 사역과 부활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파견되는 일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제자 가운데서 이제 보내심을 받는 사도로 세워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사도들로부터 교회는 시작됩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많은 기초들이 이 사도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마련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증언하는 이들이 바울로 사도처럼 새로이 사도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성서와 전통의 기준이 바로 이 사도들의 증언, 곧 사도적인 성격, 사도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교회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사도가 없이 하느님나라를 증언하는 교회가 가능할까요? 오늘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사도들을 세우셨습니다. 이 일은 교회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낭만적인 사교모임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 하느님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상의 지배체제와 영적인 전쟁을 벌이는 선교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제자들끼리의 친교공동체를 넘어서야 합니다. 친교가 정말로 친교이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의 예배와 세상에서의 선교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도를 중심으로 일치를 확인하는 교회가 예배공동체입니다. 사도를 앞세워서 세상을 향해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공동체가 선교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교직을 바로 사도직의 계승으로 이해하고 고백합니다. 이 때 주교직은 교회에서 가장 출세한 이로 여겨지는 주교 개인의 영광스런 자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바로 전례와 선교를 위해서 가장 먼저 순교할 수 있는 책임과 위상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 주교직을 나누어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을 위한 자기의 신념을 믿음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느님나라를 위한 부르심과 파견에 순종하여 하느님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우리의 믿음으로 삼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택하신 사도들이 함께 산 아래로 내려와서 수많은 제자들과 군중들을 대면하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고 치유를 베풀고 악령을 추방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런 일들에서 실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현존이 중요하다는 성서의 증언입니다. 사람들이 귀로 전해들은 말씀만 가지고, 또는 자기의 주관적인 상상만 가지고는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19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예수를 만지려고 하였다.”
무척 재미있고 의미있는 표현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을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로 환원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적극적 사고방식,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등의 기법을 신앙과 섞으려고 합니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성경말씀을 주관적으로 읽고 해석한 깨달음이 신앙의 참된 내용이므로 교회의 불필요한 전통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지니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이 만나고 만질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오늘 날도 예수님의 현존은 우리 삶에서 경험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전례의 자리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오감으로 체험합니다. 바로 성체성사, 오늘의 감사성찬례가 그렇게 예수님을 만지는 일이 됩니다. 교회는 그래서 예수님의 몸을 이룬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을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과 일치되어 예수님께서 하신 하느님나라의 일을 세상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의 자리를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은 이제 교회를 보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성사적의 의미에서 교회를 보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이기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15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고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를 사람으로 지어 육신과 생기를 허락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제자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삼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주시고
모든 이들이 민족과 계급을 넘어 참된 형제자매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세례를 통해서 주님의 몸과 일치되게 하시고
성령을 내리시어 모든 이들이 자기를 초월하여 사랑과 진리로 하나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로서 전례와 선교를 온전히 감당하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의 가치와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분별하고 이끌 수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드러내도록 도우시고 이끌어주시옵소서.
지극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시어
그 사랑으로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서정과>

2013년 9월 10일 (연중23주간 화) 성서말씀

 

골로 2:6-15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7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그 터 위에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넘치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십시오.
8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9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10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11 여러분은 세속적인 육체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형식이 아닌 진정한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3 여러분이 전에는 잘못을 저질렀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으나, 이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시고 우리의 잘못을 모두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또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이 들어 있는 우리의 빚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버리셨습니다.
15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시편 8

1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주님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 어린이, 젖먹이들도 노래합니다.
2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 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루가 6:12-19

[열두 사도 (마태오 10:1-4; 마르코 3:13-19)]
12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날이 밝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그 중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다.
14 열두 사도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와 토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혁명당원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후에 배반자가 된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밀어닥치는 군중 (마태오 4:23-25)]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 많은 제자들과 함께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안 지방인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더러운 악령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도 고쳐주셨다.
19 이렇게 예수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을 보고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예수를 만지려고 하였다.

 

<본기도> 주 하느님,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스스로 설 수 없음을 아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항상 보호하시어 모든 유혹과 위험에서 구원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