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년 강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용기를 잃지 맙시다 (루가18:1-8/ 이경호신부)

 

2013년 10월 20일 연중 29주일 주 녹 성경말씀 / 대구성당축성
예레 31:27-34 / 시편 119:97-104 / 2디모 3:14-4:5 / 루가 18:1-8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용기를 잃지 맙시다.

  

그동안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낙심과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요? 그동안 인생길을 걸어오시면서 여러분의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이나 시련을 만났을 때 어떻게 견디어 내셨는지요? 그리고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지요?

혹시 여러분의 남편이 오늘의 복음서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처럼 아내가 아무리 졸라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 자기 고집을 내세우는 사람은 아니었는지요?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말에 도무지 귀 기울여 듣고 않고 무시하면서 아주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저 인간은 결코 편하지 않는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기대할 수도 없다”고 말하며 불편한 한 집살이를 하는 분들은 없는지요? 부부로서 서로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고 늙어 간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인생인데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중국 민담에 {맹부인의 눈물}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시황제는 북쪽 오랑캐 훈족을 막기 위해서 거대한 성벽 만리장성을 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을 쌓을 때마다 무너져 버리곤 했습니다. 그 때 한 현자가 진시황제 앞에 나타나 “만리장성을 축조를 완성하려면 1킬로미터마다 사람을 죽여 매장시켜야만 이 장성은 완성될 수 있노라고, 그러면 거기에 매장된 사람이 1킬로미터를 지킬 것”이라고 간언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죽음의 공포가 온 나라를 짓눌렸습니다. 정말 1킬로미터 마다 한 사람씩 잡아 죽이니 성은 잘 진척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성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쯤 또 한 사람이 나타나 진시황제에게 간언합니다. “만(萬)이 일만을 뜻하므로 만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마지막으로 성벽에 매장하면 성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군사들이 온 나라로 퍼져 나가 만씨 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제물은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만씨 성을 가진 새 신랑이었습니다. 맹부인의 남편은 그렇게 끌려갔습니다.

 

 신혼의 하룻밤도 함께 지내지 못하고 헤어진 남편, 그 남편을 찾아 나선 맹부인은 산을 넘고 강물을 건너 마침내 그 거대한 성벽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성벽에서 남편의 시신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가지뿐이었습니다. 처절한 울음, 피를 토하는 울음, 탄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맹 부인이 흘린 눈물과 탄식이 거대한 성벽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만리장성은 무너져 내렸고, 거대한 돌무더기에 짓눌려 부서진 만씨의 유골이 흩어졌나왔습니다. 결국 맹부인은 남편의 유골을 찾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민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계속되지만 여기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진시황제와 그의 추종자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서 만리장성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 성을 쌓아야만 나라는 안전할 것이며,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있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은 무고한 백성들의 피를 원했습니다. 백성들의 생명은 파리 목숨처럼 죽어야 했습니다.

 

만리장성은 백성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정성으로 완성된 성이 아닙니다.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성이었습니다. 강제로 고된 부역을 하니 성이 제대로 축조 될 리가 없었겠지요. 하여 성은 무너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쌓던 성이 무너지니 황제는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서 1킬로마다 한 명을 죽여서 성 쌓기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제대로 쌓지 못하면 죽는다는 본보기를 보인 것이지요.

 

성이 완성된 후에 진시황제와 그의 신하들은 이 만리장성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성이요, 가장 튼튼한 성이라며 만족했을 것입니다. 이제 훈족  오랭캐의 침입은 문제없고 두렵지 않다면 자신만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민담은 그렇게 쌓은 만리장성도 한 여인의 처절한 절규에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만리장성 앞에서 맹 부인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녀의 탄식과 눈물은 사랑하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진실의 마음이 담겨 있는 눈물입니다. 맹부인은 거대한  만리장성이라는 벽을 만났지만 오직 남편을 향한 사랑과 진실한 마음으로 그 성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여인의 눈물과 탄식은 무자비한 권력을 부끄럽게 했고, 그 권력이 세운 만리장성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도 맹부인과 같은 한 가난한 여인이 나옵니다. 성서에서 가난한 과부는 늘 힘없는 약자요, 무력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불의한 힘이 센 강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이 당한 억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재판관 역시 불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맹 부인이 만났던 거대한 만리장성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불의한 재판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여인은 눈앞에 놓인 악조건에도 절망하여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을 움직였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의 제자들아!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 여인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 역시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가난한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 것이니 그렇게 기도하라는 기도의 태도나 자세를 일깨워 주는 말씀일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 앞에 있는 말씀부터 읽으며 오늘의 복음말씀이 전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오늘의 본문 앞부분에는 루가복음 17장 20절 이하를 보시면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나라가 언제 오겠느냐?” 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을 단 하루라고 보고 싶어 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마치 번개가 번쩍하여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환하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그 날에 그렇게 올 것.”이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가 그만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여 낭패를 당한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이런 말씀은 사람들의 하느님의 나라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오늘의 복음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불의한 재판관처럼 버티고 서 있는 악의 세력에 실망하고 믿음의 길을 벗어난다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은 단순히 우리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매달리고 부르짖어야 한다는 “기도의 태도나 자세에 대한 가르침” 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즉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신자의 “종말론적인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구해야 할 기도의 핵심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시며 입을 것인가? 즉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강조하여 말씀드리면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삶은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 일로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살려고 할 때는 언제나 우리의 현실에서 불의한 재판관처럼 버티고 서 있는 상황을 만나겠지만 그 때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견디어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약자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배운 것이 부족해서, 어느 특정지역 사람이라서, 요즘은 성공회 신자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교우 여러분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하셨는지요? 하느님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기를 바라실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때 우리는 불의한 권력, 사탄의 세력을 만납니다. 불의는 언제나 정의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의한 힘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권모술수로 믿음의 공동체를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불의한 세상, 현실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과 은총으로 힘없는 약자들의 눈물 씻어주고, 탄식으로 눈물 흘리던 사람들이 기쁨과 감사의 노래,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구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힘을 모으고 연대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공동체입니다.   

 

맹 부인이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리장성에서 눈물 흘린 것처럼 오늘복음의 가난한 여인이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믿고 그렇게 하느님 나라를 향한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로의 권면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의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십시오.
그대는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시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그대는 1)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2)고난을 견디어 내며 3)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4)그대의 사명을 완수하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으로 나갑시다. 하여 한 주간 동안 우리 모두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루는 삶으로 보람 있는 한 주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주임사제 이경호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