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3년 11월 24일 (연중 34주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성서말씀과 강론초록

 

 

2013년 11월 24일 (연중 34주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성서말씀

 

예레 23:1-6

1 "이 저주받을 것들아, 양떼를 죽이고 흩뜨러 버리는 목자라는 것들아, 야훼의 말을 들어라. 2  내 백성을 칠 목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내 양떼를 돌보아야 할 너희가 도리어 흩뜨려서 헤매게 하니, 너희의 그 괘씸한 소행을 어찌 벌하지 않고 두겠느냐! 똑똑히 들어라. 3 나 비록 나의 양떼를 이 나라 저 나라로 헤매게 하였지만, 그 중에서 살아 남은 것을 모든 나라에서 본래의 목장으로 다시 모아 들여 크게 불어나게 할 것이며,   4 그들을 위하여 참 목자들을 세워 주리라. 그러면 내 양떼는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 없이 살 것이며,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5 내가 다윗의 정통 왕손을 일으킨 그 날은 오고야 만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는 현명한 왕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펴리라. 6 그를 왕으로 모시고 유다와 이스라엘은 살 길이 열려 마음 놓고 살게 되리라. '야훼 우리를 되살려 주시는 이' 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리라. 

 

시편 46

 1 하느님은 우리의 힘, 우리의 피난처,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구해 주셨으니 
 2 땅이 흔들려도 산들이 깊은 바다로 빠져 들어도, 우리는 무서워 아니하리라. 
 3 바닷물이 우짖으며 소용돌이쳐 보아라, 밀려 오는 그 힘에 산들이 떨어 보아라, (만군의 주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4 강물의 줄기들이 하느님의 도성을 지존의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한다. 
 5 그 한가운데에 하느님이 계시므로 흔들림이 없으리라. 첫새벽에 주께서 도움을 주시리라.   6 한 소리 크게 외치시니 땅이 흔들리고 민족들은 뒤설레며, 나라들이 무너진다. 
 7 만군의 주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8 너희는 와서 보아라. 세상을 놀라게 하시며 야훼께서 이루신 이 높으신 일을! 
 9 땅 끝까지 전쟁을 멎게 하시고, 창 꺾고 활 부러뜨리고 방패를 불살라 버리셨다. 
 10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 세상 만민이 나를 높이 받들어 섬기리라." 
 11 만군의 주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다. (셀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골로 1:11-20

11 또 우리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부터 오는 온갖 힘을 받아 강하여져서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12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읍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 났습니다.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16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18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1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20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읍니다. 곧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읍니다. 

 

루가 23:33-43

33 해골산이라는 곳에 이르러 사람들은 거기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죄수 두 사람도 십자가형에 처하여 좌우편에 한 사람씩 세워 놓았다.
34  예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 하고 기원하셨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사람들이 곁에 서서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보고 "이 사람이 남들을 살렸으니 정말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도 살려 보라지!" 하며 조롱하였다.
36  군인들도 또한 예수를 희롱하면서 가까이 가서 신 포도주를 권하고 37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 하며 빈정거렸다.
38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 사람은 유다인의 왕' 이라는 죄목이 적혀 있었다. 
39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수 중 하나도 예수를 모욕하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죄수는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하고 꾸짖고는  42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43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 가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어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며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여 주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왕되신 주님께 감사! (루가23:33-43)

 

오늘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王)이 되심을 기념합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절대군주처럼 막강한 힘과 위세를 지니신 분임을 강조하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이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범으로 몰려 무력하고 무참하게 죽으신 예수님은 분명 이 세상이 기대하는 차원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그리스도가 있는가? 믿기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는 이상한 그 ‘그리스도’라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세상은 무수한 조롱의 말을 늘어놓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새로운 차원의 왕이셨는데 그 신비를 깨달은 이는 역설적으로 예수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였습니다.

우리는 루가복음서를 통하여 그 강도가 마지막 숨을 모아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기억해주십시오” 한 고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는 주님의 약속을 듣습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성찬례를 통하여 바로 이 고백을 드리고 그 약속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어쩌면 강도를 닮아 살아온 우리의 일생은 이 고백과 그 약속이 절대로 필요하고 또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강도는 단지 엄청난 행운의 사나이일까요? 이 강도처럼 제 멋대로 일생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여 구원을 받는 일은 나름 일생을 신실하게 살려고 애써온 이에게는 어째 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편한 마음을 참고 구원의 본질을 생각해봅니다. 구원은 낙원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일입니까? 강도는 예수님께 믿음을 잘 고백해서 그 자격을 얻은 것일까요? 믿음은 입으로 그런 고백을 잘하는 일일까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은 강도가 보여준 것은 깊은 통찰력을 통하여 주님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 능력입니다. 십자가 주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고정관념으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기에 바빴지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계에 자기를 개방(開放)한 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선하심과 의로움과 절대적인 사랑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과연 죽음의 순간까지도 새로운 통찰, 새로운 관계에 생각과 마음을 열 수가 있을까요? 강도의 구원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올바로 깨닫고 응답한 마땅한 결과입니다. 신앙적으로 구원은 단지 행업을 잘 쌓은 공로 이전에 새롭게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눈을 떠서 그 분의 놀라운 은총을 누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낙원’은 단지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향(理想鄕)이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낙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낙원의 새로운 왕이십니다. 하느님의 다스림, 그 사랑과 평화의 왕국이 우리 마음 안에, 우리의 삶 가운데, 이 땅의 세상에 가능하도록 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랑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이루어져야 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기도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땅의 정치적인 현실에도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고백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권력, 정치적인 판단 자체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는 지혜를 동시에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는 민주공화국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이고 그 다스림은 홀로 다스리시는 독재에 초점이 있지 아닙니다. 전체를 위한 다스림, 다시 말하면 전체를 위한 섬김이라는 점에 중요성이 있습니다. 이 때의 전체는 단순한 집합이나 체제자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곧 콤뮤니언(communion)을 이룬,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고 의지하고 존중하고 신뢰하고 상호 발전하는 전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교회공동체는 바로 그런 전체를 보여주고 그런 전체가 하느님의 다스림을 어떻게 아름답고 위대하게 살아가는가를 세상에 보여줄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왕에 대하여 무조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왕은 단순히 전근대적인, 봉건적인, 오로지 타파의 대상인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현실적인 다스림, 질서, 지배체제의 상징입니다. 북한은 거의 왕정체제에 가깝습니다. 물론 일당독재와 결합되어있지만요. 그래도 국호는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고 대통령제 국가입니다. 대통령은 현대의 왕입니다.

 

자유와 평등, 평화, 행복은 사회와 국가를 이룬 우리들의 꿈입니다.

세상은 자유를 욕망과 이익을 추구할 기회의 보장으로 봅니다.
세상은 평등을 끼리끼리의 기득권유지로 봅니다.
세상은 평화를 힘(권력)에 의한 이해관계의 조정으로 봅니다.
세상은 행복을 자기의 실현, 자기의 만족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시각을 가집니다.
교회는 자유를 말씀과 진리를 따라 사는 삶으로 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진리는 자유와 자유의 충돌이 아닌 상생과 상승으로 이끕니다.)
교회는 평등을 차별과 장벽을 넘어선 영적사귐(소통)과 나눔과 공유로 봅니다.
교회는 평화를 섬기는 힘에 의한 문제의 풀이로 봅니다. 복음적인 권력은 푸는 힘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단순히 세상에 군림하시는 왕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이 땅에 보여주신 왕이십니다.
이 땅의 지배체제와 충돌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 왕이십니다.
못박힌 왕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렇다고 왕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박한 이해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저 세상의 왕이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돌아오시어 이 땅을 다스리실 왕이십니다.

세상의 권력과 이념과 시스템에 대하여
전체성, 통합성을 제시하고 요청하는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건강과 평안, 소원성취, 만사형통도 물론 기도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삶의 모든 계기와 시간 속에 “예수님의 왕되심”이야말로 우리가 기쁘게 누리며 감사해야 할 깊고 풍성한 내용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