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6일 (연중 27주일) 성경말씀 / 피데스 / 북한수덕성당
피데스(순교자, 304년경)
애가 1:1-6
1 아, 그렇듯 붐비던 도성이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예전에는 천하를 시녀처럼 거느리더니, 이제는 과부 신세가 되었구나. 열방이 여왕처럼 우러르더니 이제는 계집종 신세가 되었구나.
2 밤만 되면 서러워 목놓아 울고, 흐르는 눈물은 끝이 없구나.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조차 위로하여 주지 않고 벗들마저 원수가 되어 등돌리는구나.
3 유다는 욕보면서 살아오다가 끝내 잡혀가 종살이하게 되었구나. 이 나라 저 나라에 얹혀살자면 어디인들 마음 붙일 곳이 있으랴. 이리저리 쫓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뒷덜미를 잡힌 꼴이 되었구나.
4 시온으로 오가는 길목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끊어지고, 들리는 것은 통곡 소리뿐이구나. 모든 성문은 돌더미로 주저앉고, 사제들 입에서는 신음 소리뿐이요, 처녀들 입에서는 한숨 소리뿐이구나. 아, 시온이 이렇게도 처량하게 되다니,
5 야훼께 거스르기만 하던 시온, 정녕 죄를 받고 말았구나. 시온의 원수들이 득세하여 이제 닥치는 대로 어린것들마저 끌어가는구나.
6 수도 시온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지도자들은 목장을 잃은 염소처럼 떠돌며 원수에게 맥없이 끌려가고 말았구나.
시편137
1 바빌론 기슭에 앉아 ◯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2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 수금 걸어 두었더니 ◯ 우리를 잡아 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는구나.
3 우리를 끌어 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 졸라대면서 ◯ “시온 노래 한가락 불러라” 하였지만
4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 주님의 노래를 부르랴!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릴 것이다.
6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7 주여, 잊지 마소서. 예루살렘이 떨어지던 날에 에돔 사람들이 소리치던 말, ◯ “쳐부숴라, 바닥이 드러나게 헐어 버려라.”
8 파괴자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 그대로 갚아 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9 네 어린 것들을 잡아다가 ◯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2디모 1:1-14
1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로는 2 아들같이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선포하는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읍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그대에게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느님을 섬깁니다. 4 나는 그대가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읍니다. 만나게 되면 내 기쁨은 더할 나위없이 클 것입니다. 5 나는 그대의 거짓없는 믿음을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또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도 지금 그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6 그래서 나는 다시 그대를 깨우쳐 줍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7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 8 그러므로 그대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증인이 된 것이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죄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읍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은총은 천지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10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제는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없애 버리시고 복음을 통해서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셨읍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해서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읍니다. 12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가 맡은 것을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13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원칙으로 삼으시오. 14 또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그대가 맡은 훌륭한 보화를 잘 간직하시오.
루가 17:5-10
[믿음의 힘 ]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6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종의 의무] 7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 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 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8 오히려 '내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10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본기도> 신실하신 하느님, 부족한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며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믿음의 힘, 종의 의무 (루가 17:5-10)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의 청은 곧 우리들의 청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마르코 복음 8장에서 비슷한 청원을 봅니다. 악령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하자 예수님은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고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자 아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지요. 이는 고백과 겸손이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청원입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 오늘 루가복음에서 제자들의 청원은 약간 불순합니다. 왜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까? 우리 경험에 비추어 제자들의 마음을 짐작해보면 아마도 신통력을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한 믿음이 기적을 체험하게 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분명히 “믿는 사람에게는 안되는 일이 없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제자들과 우리는 믿음과 기적에 대하여 중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믿음은 분량이나 강도로 측정될 수 있는 우리의 신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교리나 법칙에 대한 지적 확신이 아닙니다. 자아가 굳센 신념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도 아닙니다.
믿음은 매우 가냘픈 신뢰입니다. 참으로 불안한 나의 실존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믿음을 내세워 무슨 거래를 청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십니다. 우주보다 크신 하느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무슨 믿음을 자랑합니까? 우리의 장담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의 신실함이란 하느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기대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결국 하느님께 겸손히 의탁하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을 베푸십니다. 무슨 기적일까요?
신앙에 있어서 기적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모든 일입니다. 기적 중의 기적은 우리가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 자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 일, 인생과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된 일, 그래서 이기적으로 욕망을 쫓고 두려움과 미움으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감사하고 기뻐하며 더불어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 참된 기적입니다. 이 기적에 비하면 초자연적인 기적은, 가령 문자 그대로 뽕나무가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진대도 실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일 뿐이지요.
하느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호칭은 그 자체로 귀한 신앙고백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우리의 종된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 주인노릇을 하고 싶어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나쁘지 않지. 하지만 그건 내가 내 맘대로 살아가는 일에 방해가 안 될 때까지야. 내 맘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건 불행한 노예의 삶일 뿐이야.” 실제로 많은 똑똑한 이들이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일을 불편해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겠노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주인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종으로 부려야 합니다. 서로 주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종으로 삼으려고 경쟁하고 다투는 것이 세상입니다. 알고 보면 그 주인은 결국 자기 욕망의 노예요, 세상의 하수인이며, 결국은 죽음의 포로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종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 사이에서 공치사를 하지 말라는 처세훈을 가르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는 종의 고백은 실은 하느님께 우리가 드려야 할 고백입니다. 진정 그렇게 겸손한 고백을 바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환경 모든 것이 무상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져온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업을 내세워서 하느님께 보상을 청구할 근거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바라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참된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현세의 보상과 내세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셨지요.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은 우리를 착취하는 나쁜 주인이 아니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모두 오직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얻고 또 얻게 하시려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생각하면 실상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는 우리를 위한 일을 하느님께서 당신이 필요로 하시는 일처럼 요청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찬양받기를 원하신다는 뜻도 하느님이 아부를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 향한 찬양과 감사가 우리 삶의 풍요롭고 행복한 내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은총만이 의미 있을 뿐, 우리 자신의 공로는 가치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자기 믿음 때문에 구원받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은총을 입은 것을 감사하는 이들입니다. 자기 존재의 모든 신비에 대해 통달하여 그 신비를 파헤치는 대답을 주장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신비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신비를 놀라워하며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으로 그 신비를 겸허히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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