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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2월 2일 (주의 봉헌 /연중4주일) 성찬례 성서말씀

 

 

 

2014년 2월 2일 (주의 봉헌 /연중4주일) 성찬례 성서말씀

 

말라 3:1-5

1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 보아라. 이제 그가 온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2 그가 오는 날, 누가 당해 내랴? 그가 나타나는 날, 누가 버텨내랴? 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 빨래터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아, 풀무질하여 은에서 쇠똥을 걸러내듯, 레위 후손을 깨끗하게 만들리라. 그리하면 레위 후손은 순금이나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되리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치는 제물이 옛날 그 한 처음처럼 나에게 기쁨이 되리라.
5 나는 너희의 재판관으로 나타나 점쟁이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 하늘 두려운 생각없어 날품팔이, 과부, 고아, 뜨내기의 인권을 짓밟는 자들의 죄를 당장에 밝히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시편 24:(1-6) 7-10

1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주님의 것, ◯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주님의 것
2 주께서 바다 밑에 기둥을 박으시고 ◯ 이 땅을 그 물 위에 든든히 세우셨다.
3 어떤 사람이 주님의 산에 오르랴? ◯ 어떤 사람이 그 성소에 들어서랴?
4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데 뜻을 두지 않고 ◯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이다.
5 이런 사람은 주님께 복을 받고 ◯ 하느님께 구원받을 사람이다.
6 이런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며 ◯ 야곱의 하느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다.
7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싸움에 용맹 떨치신 주님이시다.
9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 영광의 왕께서 드신다.
10 영광의 왕이 누구신가? ◯ 만군의 주께서 영광의 왕, 그분이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히브 2:11-18

11 사람을 거룩하게 해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고
12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하겠습니다."  2)시편 22:22.
13 또 "3)나는 그분을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고 또 다시 "4)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이 나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3)이사 8:17(2사무 22:30 참조).  4)칠십인역 이사 8:18.
14 자녀들은 다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15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16  5)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5)이사 41:8-9. 17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점에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18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루가 2:22-40

22 그리고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23 그것은 "1)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1)출애 13:2(13:12, 15 참조).
24 또 주님의 율법대로 2)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2)레위 5:7, 12:8.
25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26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주셨던 것이다.
27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28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29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30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31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32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33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34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35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36 또한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37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왔다.
38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본기도>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느님, 오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성전에 봉헌되셨나이다. 겸손히 비옵나니, 우리도 정결한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봉헌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봉헌의 사랑으로 타오르는 삶 (주의 봉헌 축일)

 

오늘은 아기 예수께서 성전에 바쳐진 일을 기념합니다. 본래 하느님의 차지인 첫아들을 그 부모가 성전에 값을 치르고 ‘속량’하여 기른다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해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일, 봉헌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서는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어야 하는 것처럼 욕심을 부립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모든 것이 하느님이 주신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 감사의 표시로 봉헌을 합니다. 아까워하거나 마지못해하며 드리는 것은 참된 봉헌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봉헌은 우리의 모든 존재와 소유가 본래 하느님께 속한 것이고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봉헌의 절정은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느님께 바쳐진 존재요,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을 바치는 삶입니다.

봉헌의 참뜻이 잊혀져가는 세상입니다. 댓가를 바라고 바치는 것은 참된 봉헌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정한 뇌물에 불과합니다. 계산을 하면서 일부를 떼고 일부를 바치는 것도 진실한 봉헌이 아닙니다. 그저 이기적인 거래일 뿐입니다. 참된 봉헌의 동기는 거짓 없이 오직 사랑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청할 때 과연 우리가 어떤 자격이나 조건도 갖추었기 때문에 청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하느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은총을 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것도 아무런 조건이나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의 봉헌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바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으로 바쳐진 인생은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사랑을 모르는 어두운 세상에서는 오직 사랑으로 바쳐지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만이 빛납니다. 예수께서 바로 양초처럼 자신을 태워 빛을 뿜는 사랑의 그리스도이셨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랑의 빛으로 타올라야 할 운명입니다.

불붙은 초는 계속 자신을 녹이며 사라져갑니다. 보통 사람들은 불붙지 않고 그냥 흰 초로 남아있는 초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빛으로 변화되어 사라지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믿음 없는 인생은 심지 없는 초와 같습니다. 사랑으로 불붙지 않은 인생은 불꽃 없는 초와 같아서 가능성으로만 남게 됩니다.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빛”의 신비를 알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랑으로 불태우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