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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3월 14일 (사순9일 /사순1주간 금 /자 /사계재) 성서말씀

 

 

2014년 3월 14일 (사순9일 /사순1주간 금 /자 /사계재) 성서말씀

 

에제 18:21-28

21 그러나 만일 못된 행실을 하던 자라도 제 잘못을 다 버리고 돌아와서 내가 정해 준 규정을 지키고 바로 살기만 하면 그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22 나는 그가 거역하며 지은 죄를 다 잊어주리라. 그는 옳게 산 덕분으로 살게 되리라.
23 그가 못된 행실을 한 자라고 해서 사람이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겠느냐?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도 그 가던 길에서 발길을 돌려 살게 되는 것이 어찌 내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
24 그러나 만일 옳게 살던 사람이 그 옳은 길을 떠나 나쁜 일을 하여 나 보기에 역겨운 짓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따라다니며 한다고 하자. 그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그가 이전에 옳게 산 것도 알아주지 않으리라. 그는 나를 배신하여 지은 죄를 쓰고 죽을 것이다.
25 너희는 이 야훼가 하는 일을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 족속아, 들어라.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26 옳게 살던 자라도 그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게 산 탓으로 죽는 것이다.
27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그 못된 행실을 털어버리고 돌아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28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

 

시편 130

1,2 주여,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을 부르오니: 주여, 이 부르는 소리 들어 주소서. ◯ 애원하는 이 소리, 귀 기울여 들으소서.
3 주여, 당신께서 사람의 죄를 살피신다면, ◯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4 그러나 용서하심이 당신께 있사오니 ◯ 이에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5 나는 주님 믿고 또 믿어 ◯ 나의 희망 그 말씀에 있사오니,
6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 ◯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옵니다.
7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 이스라엘이 주님을 기다리옵니다.
✤ 인자하심이 주님께 있고 ◯ 풍요로운 속량이 그에게 있으니
8 그가 이스라엘을 속량하시리라. ◯ 그 모든 죄에서 구하시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마태 5:20-26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성내지 마라]
21 "'2)살인하지 마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 하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출애 20:13(신명 5:17).
22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24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25 누가 너를 고소하여 그와 함께 법정으로 갈 때에는 도중에서 얼른 화해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고소하는 사람이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형리에게 내주어 감옥에 가둘 것이다. 26 분명히 말해 둔다. 네가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할 것이다."

 

<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성자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사십 일을 금식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에게 극기의 은총을 내리시어 성령을 따라 살게 하시고, 하느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뜻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성직후보자) 주 하느님, 거룩한 사도들로 하여금 여러 곳에서 성직을 베풀게 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주님의 부르심으로 성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주님의 말씀과 성사를 맡기에 합당한 종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수도자)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청빈과 정결과 순명을 서약하고 주님을 따르도록 부르신 사람들을 인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그들이 기도와 봉사로써 주님의 교회를 풍성하게 하며, 생활과 경배로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은 사계재를 지킵니다. 사계재란 일 년 사계절(四季節)에 각각 3일씩 단식하고 금육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기도하던 때를 말한다. 교회력에 따라서 겨울에는 대림 제3주간, 봄에는 사순 제1주간, 여름에는 성령강림절, 가을에는 십자가의 날(9월 14일) 등을 전후하여 각각 수요일과 금요일, 토요일에 지킵니다.
각각 수요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되심을 기념하는 의미로, 금요일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켜졌으며
토요일은 예수 죽음의 슬픔과(성금요일) 예수 부활의 기쁨(부활주일) 사이에 있는 날이기 때문이랍니다. 오늘은 춘계재의 둘째 날로 특별히 성직후보자들과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를 바칩니다.


사계재에 얽힌 일화로는 덴뿌라 이야기가 있습니다. 각종 해산물이나 야채를 밀가루에 묻힌 후, 계란으로 옷을 입혀 고온의 식용유에 튀겨 낸 일본 음식이 '덴뿌라 (てんぷら)'입니다. 영어로는 'Tempura', 한자로는 '天婦羅'로 쓰고, 우리 말로는 튀김이라고 하지요. 덴뿌라의 어원은 일본말이 아니라 라틴어라는 것이지요. 일본은 1570년 나가사키(長崎)항을 서양에 개방했고, 포루투칼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포교하던 중 사계재일 (四季齋日)'이 되면(라틴어로는 쿠아투오르 템포라 'Quatuor Tempora') 각 계절의 3일간 고기를 먹는 대신 생선을 먹으며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였던 것에서 덴뿌라라는 말이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반찬은 덴뿌라로 준비해보시고 가족들에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총명한 자신, 신실한 자녀가 있으면 성직자, 수도자로 자라나기를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의 믿음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는 믿음이 사랑과 소망과 연결되어 있는 신뢰의 태도라고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신념과 혼동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믿음의 강도와 분량이 하느님의 능력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으면 오해요 착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리라는 믿음은 좋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시면 왜 하느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하지요?우리는 얼마나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들에게 냉정한지요! 이방인이나 타인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많이 바치고 충분히 봉사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달랠 수 있어야 우리 문제에 대한 하느님의 해결의지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착각이요, 그리스도교의 신학에서는 일종의 신성모독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참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 세상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신자들의 주관적인 착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 빵과 포도주를 통해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이 빵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이 잔은 너희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

오늘 사계재에 성직후보자와 수도자를 위해 기도하거니와, 성직후보자, 수도자가 되는 일도 더 많이 헌신한다는 일이 본질이 아닙니다. 더욱 더 하느님의 시각을 구하고 하느님의 관점에 의지하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더욱 더 좋은 식별력을 훈련하는 일입니다.

사순절기의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인 의지를 훈련하는 일이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더 복받고 더 잘 되기 위해서, 더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순절기는 부활을 준비하기 위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실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가 되는 점은 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죽는가 하는 점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 일이 하느님나라를 항하여 살아나는 일입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 나를 하느님의 영을 통해 살리는 일이 됩니다.

열심히 믿어도 하느님께서 기도응답을 안 해주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참 마음이 아픈 상황입니다. 실은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삶으로 그 실제 내용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기위해 말과 생각과 행실을 조심하는 일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하겠지요. 이렇게 열심히 구했으니, 이제는 속된말로 양심이 있으면 하느님께서도 들어주셔야지요...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기 어렵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새로운 관점을 얻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일이고, 그래서 더 옳게 사는 일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삶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삶을 위하여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기를 잘 지켜서 우리의 믿음이 주님의 시각으로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