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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3년 9월 24일 (연중25주간 화) 성찬례 성서말씀

 

 

 

2013년 9월 24일 (연중25주간 화) 성서말씀  / 수동성당 축성

 

에즈 6:6,9,13-22

6 이것을 보고 다리우스 황제는 아래와 같은 영을 내렸다.1) "이제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다뜨내 총독과 스달보즈내와 동료 관리들과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 있는 아바르사인들은   1)이 구절은 아람어 본문에는 없으나 그리스어로 된 1에스드라(제2경전) 6:27을 따라 넣었다.
9 그 밖에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대어주도록 하여라. 예루살렘 사제들이 하늘을 내신 하느님께 소와 숫양과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고 밀가루와 소금과 술과 기름을 곁들여 바쳐야 하겠다고 하거든 얼마든지 요구하는 대로 날마다 어김없이 대어주어라.
13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다뜨내 총독과 스달보즈내와 동료 관리들은 다리우스 황제에게 받은 지시를 어김없이 시행하였다.
14 유다 장로들은 예언자 하깨와 이또의 아들 예언자 즈가리야의 격려를 받아가며 순조로이 공사를 진행시켜 마침내 이스라엘 하느님의 명령을 따라, 고레스와 다리우스의 칙령대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15 일이 끝난 것은 다리우스 황제 2)제육년 아달월 삼일이었다.  2)기원전 515년이다.
16 사제들과 레위인들,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일반인, 이렇게 온 이스라엘 백성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성전 봉헌 예배를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성전 봉헌 예배에 소 백 마리, 숫양 이백 마리,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의 속죄제물로서 이스라엘 지파 수대로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또 모세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반열을 따라 사제를 세우고 반을 따라 레위인을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게 하였다.
[돌아온 사람들의 첫 과월절]
19 풀려 돌아온 사람들은 정월 십사일에 과월절을 지켰다.
20 모든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일제히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한 다음 풀려 돌아온 모든 백성과 동료 사제들과 함께 먹을 과월절 제물을 잡으니,
21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도 먹고, 이 땅에 사는 다른 민족들과 같이 지내며 탄 부정을 스스로 떨쳐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를 같이 찾게 된 사람들도 모두 함께 먹었다.
22 그리고 이레 동안 기뻐하며 무교절 축제를 지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다리우스 황제의 마음을 돌리셨으므로 용기를 얻어 당신의 성전을 짓게 된 일이 마냥 즐거웠던 것이다. 

 

시편 124

1 이스라엘이 하는 말, ◯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2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 ◯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3 그들은 달려들어 살기등등하게 ◯ 산 채로 우리를 집어 삼켰으리라.
4 거센 물살에 우리는 휩쓸리고, ◯ 마침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리라.
5 거품 뿜는 물결에 ◯ 빠져 죽고 말았으리라.
6 주님을 찬미하여라. ◯ 우리를 원수들에게 먹히지 않게 하셨다.
7 새 잡는 그물에서 참새를 구하듯이: 우리의 목숨을 건져 내셨다. ◯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살아났다.
8 주님의 이름밖에는 우리의 구원이 없으리. ◯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루가 8:19-21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마태오 12:46-50; 마르코 3:31-35)]
19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께 왔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만날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을 만나시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21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본기도 > 사랑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이 주님께 행한 일이라고 가르쳐 주셨나이다. 비옵나니, 주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제 뉴스에는 강화에서 모친의 10억 재산을 두고 불화했던 작은 아들이 모친과 형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지난 추석과 같은 큰 명절 후에는 이혼이 급증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시집과의 갈등,  처가와의 불화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1979년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마더 데레사 수녀는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답했답니다.
“집에 돌아가 가족을 사랑해주세요.”

십계명의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약속이 붙어있는 첫 계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것입니다.”
늙으신 부모에게 봉양을 잘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신앙을 이어가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의 자유, 종교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부모님이 좋은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이 때의 신앙은 교리나 도덕이 핵심이 아닙니다.
자유와 사랑과 지혜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려면 부모님이 습관적인 태도로 관습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진정 자녀를 사랑하시거든 부모님들이 자신의 신앙을 먼저 새롭고 깊게 확인해야 합니다.
신앙을 통해서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모습이 아니라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난 19일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신문 ‘시빌타 가톨리카’ 인터뷰에서 “교회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동성애자, 이혼한 사람, 낙태 여성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촉구했답니다.

교황은 교회를 “모두를 위한 집”으로 표현했습니다. 교회가 독단과 도덕적 교리에 집착했다고 비판하며 교황께선 “오늘날 가톨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그동안 이혼과 낙태, 동성애 등을 거부하는 데 치중한 탓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혼·낙태·동성애는 천주교의 신실한 이들이 교회신앙의‘핵심 가치’로 강조해온 ‘가족의 신성함’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가족은 물론 소중합니다. 하지만 가족 자체, 가족의 신성함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가족과 가족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지요. 가족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을 통해서 우리가 참된 사람다움과 사람으로서의 서로 사귐을 배우기 때문에 가족이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고 공경했지만 자기를 찾아온 가족들을 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예수님 당시의 사회, 더구나 유목민들에게 엄격한 가부장제가 당연한 질서입니다. 유대인들은 혈연과 신앙을 함께 중요시합니다. 그들의 선민의식에는 가족에서 지파로, 지파에서 민족으로 확대되는 오랜 이해와 전통이 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예수님의 발언은 무척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가 기쁜 소식인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고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관점을 돌이켜 하느님나라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나라의 비전 안에는“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가족의 모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가족의 모델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루고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이 사랑이 인간에게 자연스런 본능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녀 사랑, 가족 사랑도 본능이 아닙니다. 본능적인 느낌과 판단에 맡겨서는 안됩니다. 사랑은 오로지 하느님 성령의 일입니다. 깊은 신앙으로 감당할 일입니다.
가족은 어쩌면 제도의 일종입니다. 참된 가족의 신성함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교회도 각 신자의 본성을 따라 모인 무리도 아니고, 제도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에 사로잡힌 이들의 새로운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분은 세상을 향해 교리를 주장하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고통스런 현실에 대고 상품권 팔 듯 축복을 파는 일도 아니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내세의 영생을 보험상품 팔 듯 하는 일도 아닙니다.

교회의 본분은 성부, 성자, 성령의 깊은 친교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 친교는 먼저 오늘 우리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경험되고 확인됩니다.
그리고 그 친교를 세상의 곳곳에 때때에 일상에 전하는 일이 우리의 선교입니다.
그 깊은 친교는 이 세상의 죄와 악과 고통과 죽음을 이기는 힘과 지혜가 됩니다.
우리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소망하는 하느님나라는 바로 이 깊은 친교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통해서 우리는 이 깊은 친교를 함께 누리는 영원하고 신성한 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의 성찬례를 통해서 깊은 친교의 마음과 눈길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시고,
영원히 거룩한 가족이 된 기쁨과 사랑을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
집에 돌아가시거든 주님의 사랑 안에서 깊은 친교로 “가족을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