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3년 12월 22일 (대림 4주일) 성찬례 성서말씀

 

 

2013년 12월 22일 (대림 4주일) 성찬례 성서말씀

 

이사 7:10-16

[아하즈에게 내린 두 번째 경고:임마누엘 예언] 
10 야훼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이르셨다.
11  "너는 야훼 너의 하느님께 징조를 보여 달라고 청하여라. 지하 깊은 데서나 저 위 높은 데서 오는 징조를 보여 달라고 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징조를 요구하여 야훼를 시험해 보지는 않겠읍니다." 13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들어라.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도 성가시게 하려는가?
14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될 때는 양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요, 16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네가 원수로 여겨 두려워하는 저 두 왕의 땅은 황무지가 되리라. 

 

시편 80:1-7, 17-19

1 이스라엘의 목자여, 요셉 가문을 양떼처럼 인도하시는 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 거룹 위에 좌정하신 분이여,
2 에브라임과 베냐민, 므나쎄 가문 앞에, 햇빛처럼 나타나소서. ◯ 힘을 떨치고 오시어, 우리를 도와주소서.
3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4 만군의 주, 하느님, 당신 백성의 기도소리를 ◯ 언제까지 노엽게 들으시렵니까?
5 당신 백성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 싫도록 눈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6 이웃들에게는 시빗거리가 되게 하셨고 ◯ 원수들은 우리를 비웃습니다.
7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17 당신 오른편에 계시는 분, ◯ 몸소 굳건히 세워 주신 그분을 붙들어 주소서.
18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리니 우리를 살려 주소서. ◯ 당신의 이름을 불러 예배 하리이다.
19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로마 1:1-7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2 이 복음은 성서에 있는 바와 같이 일찌기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3 그것은 다름아닌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4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내가 은총으로 사도직을 받은 것도 그분을 통해서였읍니다. 이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을 믿고 복종할 것을 가르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6  여러분도 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읍니다. 
 7  하느님께서 사랑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 주신 로마의 교우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마태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루가 2:1-7)] 
18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20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22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23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25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은총으로 마리아를 택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이제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경위- 동정녀 탄생의 신비 (마태1:18-25)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우리의 고백이 제대로 성립하려면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자세히 밝히는 일이 복음성경의 목적이고,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던 제자들과 교회공동체에 대한 기록이 사도행전과 서신들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기록의 정확한 사실성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은 성경기자들의 신앙 경험과 고백 안에서 표현되고 오늘 우리 독자들의 믿음과 체험 안에서 이해됩니다.

 

예수님의 성탄이 임박했습니다. 한 아기의 생명은 태어난 자체로 기쁘고 복된 일인데 더욱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구세주 하느님으로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시는 일은 얼마나 기쁘고 복된 일입니까?
복음서는 예수가 태어나신 경위를 전하며 이 탄생이 얼마나 기쁘고 복된 소식인가를 “동정녀 탄생”의 이야기로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까닭을 그 분이 행하신 신비한 이적의 능력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도 예수가 태어나신 경위에 관한 오늘 복음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동정녀가 잉태하였다는 신비에 관심을 두기 쉽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기적을 행하실 수 있고 오늘 복음서가 동정녀 탄생을 분명히 언급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동정녀탄생의 신비는 단지 생물학적 신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실이냐 상징적 이야기냐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복음서가 참으로 전하고자 하는 더 중요한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터이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지만 그 뜻은 “야훼 하느님은 구원해주신다”는 깊은 의미입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와 “임마누엘”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면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수 밖에 없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즉 이야기의 촛점은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기적에 의해 탄생하셨다는 데 있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계획하시고 인간의 준비나 기대를 넘어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신 일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을 맞으며 기억해야 할 일,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일이 바로 이 사실, “하느님 사랑의 주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계산대로 움직이시지 않고 당신의 절대적인 사랑의 동기로 행동하십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절망의 순간에도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여 열정에 불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일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성탄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이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지극한 기쁨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찾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의 구원을 기뻐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
우리의 인생은 마땅히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구원받으리라는 것!
우리는 겸손히 그 하느님의 주도권에 기쁘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동정녀” 마리아와 요셉이 보여준 신앙이요 삶인 것입니다.✠

 

<강론초록2>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요셉 (마태1:18-25)

 

마태오와 루가 복음기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경위를 밝히며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신비한 일이 비록 난처한 일이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분명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이기에 어느 정도 확신 속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아닌 약혼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일어난 일이기에 이 신비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황은 몹시 당황스럽고 난처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중하게 처신을 하였습니다.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다른 이를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하느님의 뜻을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신중함과 순종하는 믿음 덕에 마리아와 태중의 아기 예수는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도 요셉의 순종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동정녀 탄생”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요셉과 마찬가지로 “믿음”을 시험받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식적인 인간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며 21세기의 문명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오해를 피하고 싶은 것은 성경이 전하는 동정녀 탄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몰상식하고, 비과학적이며, 문명을 무시하는 완고한 입장의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정녀탄생”의 이야기는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이야기와 같은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우주와 우리의 인생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늘 새롭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과 구원의 모든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식과 기대대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문제는 기대하지 않은 일, 설명할 수 없는 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마련이고 주님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적인 경험과 판단을 내세워서 흥분하고 동요하고 섣불리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요셉처럼 하느님의 경륜을 인정하고 조용히 그 분의 뜻을 묻고 듣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고통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마음도 크고 깊은 고통을 겪은 후 마침내 평안을 얻었고 큰 영예를 안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