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7일 (연중 33주일) 성서말씀 / 추수감사주일
휴고(수사, 링컨의 주교, 1200년)(교현성당축성)
말라 3:19-20상
19 보아라. 이제 풀무불처럼 모든 것을 살라버릴 날이 다가왔다. 그 날이 오면, 멋대로 살던 사람들은 모두 검불처럼 타버려 뿌리도 가지도 남지 않으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20상 그러나 너희는 내 이름 두려운 줄 알고 살았으니, 너희에게는 2)승리의 태양이 비쳐와 너희의 병을 고쳐주리라.
시편 98
1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놀라운 기적들을 이루셨다. ◯ 그의 오른손과 거룩하신 팔로 승리하셨다.
2 주께서 그 거두신 승리를 알려 주시고 ◯ 당신의 정의를 만백성 앞에 드러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다던: 그 사랑과 그 진실을 잊지 않으셨으므로 ◯ 땅 끝까지 모든 사람이 우리 하느님의 승리를 보게 되었다.
4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 기뻐하며 목청껏 노래하여라.
5 거문고를 뜯으며 주님께 노래 불러라. ◯ 수금과 많은 악기 타며 찬양하여라.
6 우리의 임금님, 주님 앞에서 ◯ 은나팔 뿔나팔 불어대며 환호하여라.
7 바다도 그 속에 가득한 것들도, ◯ 땅도 그 위에 사는 것들도, 모두 환성을 올려라.
8 물결은 손뼉을 치고 산들은 다 같이 환성을 올려라, ◯ 그가 세상을 다스리러 오시니, 주 앞에서 환성을 올려라.
9 온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 만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데살 3:6-13
6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거나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우는 여러분이 멀리해야 합니다.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게으른 생활을 하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저 얻어 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 9 그렇게 한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10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마라." 하는 말을 여러분에게 종종 했습니다. 11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12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 먹도록 하십시오. 13 교우 여러분,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십시오.
루가 21:5-19
5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6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7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9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10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11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 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13 그 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14 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 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15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잡아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18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분이시옵니다. 비옵나니,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며,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종말신앙 (終末信仰) (루가 21:5-19 )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교회력으로는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다음 주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이 마지막 주일입니다.
성경말씀들은 우리에게 이른바 종말과 심판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삽니다.
우리는 한 때는 이 땅에 존재가 없었습니다. 100년 전에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그 때 우리는 누구였을까요?
이제 우리는 한동안 이 땅에서 생명을 누리며 삽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처절히 애쓰는 사람도 있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정신없이 달리는 사람도 있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백년 후에도 이 땅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세상,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와 문화는 우리 개개인 보다 큽니다. 거기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줄만한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요 위인이라고 부릅니다.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사람을 부적격자, 낙오자라고 부릅니다. 대부분 우리는 소시민으로 우리가 속한 체제와 지배질서 속에 적응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와 문화,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체계는 과연 참되고 영원한 것일까요?
아니, 우리 자신이 백년을 못 넘기고 사라지는 이 엄연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이 세상의 가치를 따라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아무 생각 없이 대충대충 살아도 한 마당 인생이요, 온갖 고뇌를 다하고 아등바등 살아도 한 바탕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우리가 죽기 전에,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파국을 맞기 전에 우리 삶을 돌아보기를 요청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오, 우리 역사의 심판자이고 완성자이십니다.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온 세상이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자연재해와 전쟁의 이미지를 통해서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묵시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대로의 “정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지럽고 고달프고 억울한 이 세상이 끝장나고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꿈”을 그렇게 그려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의 마지막, 그리고 우리가 속한 사회와 나라의 마지막에 대하여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신앙적으로 다루는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 상에 “마지막”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를 몇년몇월몇일로 지정할 수 있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적인 의미의 마지막은 시간좌표상의 어떤 지점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역사에서 있어서 궁극적인 것, 최종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관한 물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들과 우리들의 역사에 대해 가지신 목적, 곧 하느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나서 덧없이 죽어가는 것일까요?
우리 역사는 밋밋하게 끝없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일 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지으셨다고 전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의지하여 살고 그것을 증언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인생이 하느님을 하느님 아버지로 모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불어 사는 삶임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삶을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사람들의 역사를 심판하시는 역사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삶을 가벼이 보고, 죽은 후의 제 세상에 우리가 영혼으로 들어가는 것을 구원의 문제로 중요시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도리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이 세상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들, 곧 하느님의 사람들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세력들은 우리가 이 세상의 지배체제를 따르지 않는 기색이 보이면, 다시 말해 자신들의 지배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면 우리를 박해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가 우리의 복음을 드러내고 증언할 때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논리와 가치에 아무 생각 없이 추종할 때, 우리는 어쩌면 별다른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모여 하느님을 예배하고 세상에서의 삶을 복음적인 가치를 따라 살기로 작정하면 세상은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 자신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이 세상에 대하여,이 세상을 향하여, 다른 차원의 가치와 질서를 제시하고 살아내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과 미래는 참으로 위태롭습니다. 21세기임에도 우리는 성경의 표현처럼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자연재해의 위험에 삽니다. 굶어죽는 이들,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사정없이 세상의 논리와 세상의 힘에 휘둘립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 위험한 현실, 두려운 미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우리 삶에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대하고 원하는 것들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얻어내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선포는 가장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하느님의 나라” 앞에서는 우리가 세우고 의지했던“인간의 나라”는 마땅히 끝이 나야 하고 반드시 끝장나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서려면, 곧 우리가“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려면 작고 좁은 “나”라는 자아의 “죽음”을 기꺼이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맞부딪치면 우리가 겪는 이 땅에서의 온갖 위험은 도리어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택한 하느님의 미래만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에 대하여 하느님의 목적을 생각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 우리 사회, 우리 나라에 대하여 하느님의 뜻을 바라보고 살펴야 합니다.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비전”이라고,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시선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시선으로 우리 자신의 삶과 역사를 통찰해야 합니다.
종말에 대한 신앙적인 이야기는 무섭고 절망적인 그림이 주제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우리 마음에 기쁨 가득한 소망을 가질 일입니다. 그런 소망으로 오늘 하루 하루를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살아갈 일입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게으름 없이 치열하게” 살아갈 일입니다.
교회력으로 한 해를 보내고 이제 대림절을 준비하면서, 우리 마음과 우리 교회에 참된 기쁨의 소망이 가득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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