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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3년 11월 10일 (연중 32주일) 성경말씀과 강론초록

 

 

2013년 11월 10일 (연중 32주일) 성경말씀

레오(로마의 주교, 증거자 461년) 대전교구장서품기념 북한천성성당 축성

 

욥기 19:23-27

23 아, 누가 있어 나의 말을 기록해 두랴? 누가 있어 구리판에 새겨두랴?
24 쇠나 놋정으로 바위에 새겨 길이길이 보존해 주랴?
25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26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27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 그러나 젖먹던 힘마저 다 빠지고 말았구나.

 

하깨 1:15하-2:9

 다리우스왕 제이 년이었다. 1 그 해 칠월 이십 일일, 주께서 예언자 하깨를 시켜 말씀을 내리셨다. 
 2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사제와, 그 밖에 살아 남은 모든 백성에게 일러라. 
 3  '이 성전이 예전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웠더냐? 너희 가운데 그것을 본 사람이 더러 남아 있으리라. 그런데, 지금 이 성전은 어떠하냐? 너희의 눈에도 이 따위는 있으나 마나 하지 않으냐?  4 그러나 즈루빠벨아, 힘을 내어라. 나 야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사제 여호수아야, 힘을 내어라. 이 땅 모든 백성들아, 힘을 내어라. 그리고 일을 시작하여라. 내가 너희 곁에 있어 주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5  너희가 에집트에서 나올 때 너희와 계약을 맺으며 약속한 대로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을 터이니, 겁내지 말아라. 
 6  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나는 이제 곧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를 뒤흔들고 7 뭇 민족도 뒤흔들리라. 그리하면 뭇 민족이 보화를 가지고 오리니, 내가 내리는 영광이 이 성전에 차고 넘치리라. 야훼의 말이다.  8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9 지금 짓는 이 성전이 예전의 성전보다 더 영화로울 것이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나는 이 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시편 17:1-9

1 주여, 들으소서 이 몸의 죄없음을 밝혀 주소서, ◯ 이토록 울부짖는 소리 모르는 체 마옵소서.
¶ 이 애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 이 입술은 거짓을 모르옵니다.
2 “너는 죄없다” 판결하소서. ◯ 당신의 눈은 결백한 사람을 알아 보십니다.
3 내 마음을 샅샅이 캐 보시고: 밤새도록 심문하고 불로 달구어 걸러보셔도 ◯ 무엇 하나 나쁜 것이 내 입에서 나왔습니까?
4, 5 남들이야 무얼하든지 이 몸은 당신의 말씀을 따라: 그 험한 길을 꾸준히 걸었습니다. ◯ 가르쳐 주신 길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6 하느님, 대답해 주시리라 믿고 당신을 부릅니다. ◯ 귀를 기울이시어 나의 말을 들어 주소서.
7 당신께로 피하오니, 한결같은 그 사랑을 베풀어 주소서:  오른손으로 잡아주시어 ◯ 나를 치는 자들의 손에서 건져 주소서.
8 당신의 눈동자처럼, 이 몸 고이 간수해 주시고 ◯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 숨겨 주소서.
9 이 몸을 짓밟는 악인들에게서 지켜 주소서. ◯ 원수들은 미친 듯 달려들어 나를 에워 싸고 있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데살 2:1-5, 13-17

1  교우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그분 앞에 우리가 모이게 될 일에 관해서 부탁할 말씀이 있읍니다. 
 2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어떤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여러분은 지성을 잃고 쉽사리 흔들리거나 당황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이나 혹은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가 이런 말을 편지에 써 보냈다고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3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하느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며, 또 멸망할 운명을 지닌 악한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4  그자는 사람들이 신으로 여기는 것이나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자기 자신을 그보다도 더 높이 올려 놓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잡고 앉아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5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이런 일에 관해서 누차 일러 둔 일이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13  ○주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을 택하셔서 구원을 얻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해 주셨으며 진리를 믿게 하셨읍니다. 14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여러분을 불러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 들이게 하셨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되었읍니다. 
 15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굳건히 서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전한 말이나 써 보낸 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영원한 위로와 좋은 희망을 주십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에게 힘을 주셔서 온갖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루가 20:27-38

[부활에 대한 토론(마태오 22:23-33; 마르코 12:18-27)]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29 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읍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30 둘째가 형수와 살고 31  다음에 세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읍니다.  32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읍니다. 33 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었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읍니까?" 
 34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만  3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 36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37 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38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본기도>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새로운 마음과 착한 행실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굳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2>

 

                살아계신 하느님 안에 부활한 우리 (루가 20:27-38)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태어나 살아가는 일은 죽음의 가능성을 품은 채 서서히 늙어가는 일입니다.
어떤 이는 그다지 죽음에 대해 고민을 해본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담대한 사람일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가 삶에 대해서도 역시 고민을 해본 일이 없을 가능성입니다. 인간의 삶은 죽음을 통하여 ‘한계’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만일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삶이 대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죽음을 절대적인 끝으로 보고 그저 삶 자체에만 충실하겠다는 오늘 복음서의 사두가이파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아주 현실적인 사고방식의 그들에게는 현세의 질서가 전부입니다. 사두가이파는 예수님 당대의 특권 사제계급과 부유층들로서 자기들이 누리는 것들을 반성하거나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사두가이파가 부정한 것은 부활의 가능성이 아니라 부활의 필요성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부활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기 위해서 황당무계한 사례를 만듭니다. 신명기 25장에 언급된 죽은 형의 대를 이어주는 법을 들어 일곱 형제가 모두 죽었다가 부활한다면 하나인 형수는 누구의 아내라고 보아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이 때의 부활은 실은 ‘소생’의 의미입니다. 현세에 살던 그대로의 처지와 모습으로 다시 현세의 질서 안으로 그대로 부활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다 해도 실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참된 부활은 그런 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달라지는 삶의 차원에 대한 표현입니다. 부활은 이제까지의 세상살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의 평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확인’한 이들, 곧 부활한 이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살고 죽은 일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참된 행복을 경험한 이들입니다. ‘자아’, 곧 자기가 생각하고 고집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관심은 접은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절대적인 이유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깨달은 이들이 바로 ‘죽었다가 살아난’ 이들, 곧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으로 소개하시는 하느님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영원히 살아있는 이들입니다. 부활이 없다구요? 우리는 이미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들이 아닙니까? 아니라면 대체 우리의 믿음은 뭐고 우리의 소망은 뭐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