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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4월 27일 (부활 2주일) 성찬례 성서말씀과 강론초록

 

 

 

2014년 4월 27일 (부활 2주일) 성찬례 성서말씀과 강론초록 

 
사도 2:14상, 22-32

14상 그 때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22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나자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려고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23 그런데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 25 그분에 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오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쁨에 넘치고 내 혀는 즐거워 노래하며 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 것입니다. 27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28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선조이신 다윗에 관해서 분명히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땅에 남아 있습니다. 30 다윗은 예언자로서 하느님께서 자기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주시겠다고 하신 맹세를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내다보며,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의 몸을 썩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시편 16

1 하느님, 나를 지켜 주소서. ◯ 이 몸은 당신께로 피합니다.
2 주님께 아뢰옵니다. ◯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
3 이 땅에 있는 거룩하다는 신들, ◯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4 거짓 신을 따르는 자들은 ◯ 실컷 고생이나 시키소서.
¶ 나는 그 우상들에게 피를 쏟아 받치거나, ◯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5 주여! 당신은 내가 받을 분깃이며 축복이시니 ◯ 나의 미래는 당신이 책임지십니다.
6 당신께서 나에게 떼어 주신 그 땅은 기름진 곳이니 ◯ 나의 마음이 흡족합니다.
7 좋은 생각 주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 밤에도 좋은 생각 반짝입니다.
8 주여, 언제나 내 앞에 모시오니 ◯ 내 옆에 당신 계시면 흔들릴 것 없습니다.
9 그러므로 이 마음 이 넋이 기쁘고 즐거워 ◯ 내 육신마저 걱정없이 사오리다.
10 어찌 이 목숨을 지하에 버려두시며 ◯ 당신만 사모하는 이 몸 썩게 버려두시리이까?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몸소 가리켜 주시니: 당신을 모시는 흡족한 기꺼움이, ◯ 당신 오른편에서 누릴 즐거움이 영원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베드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다시 낳아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4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는 분깃을 하늘에 마련해 두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힘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여주십니다.
6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7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넘쳐 있습니다. 9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결국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20:19-31

19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0 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7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이를 복되다고 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로 하여금 의심을 버리고 믿음과 사랑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예수께서는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요한 20:19-31)

 

2014년 올해의 부활절기는 특별합니다. 4월 16일 우리는 300명이 넘는 꽃봉오리 생명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활일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당연한 듯 “부활이 기쁘다”고 축하해온 인사가 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끼리 누리는 부활축하잔치도 소중하지만 부활의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 삶에 실천함으로써 이 어둠과 죽음의 세상에 부활의 빛과 생명을 전하는 일이 더 소중한 우리의 소명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우리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으로 성립되었지만 이천년 동안 이 물음은 교회 안팎에서 그치질 않습니다. 신심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무조건 의심 없이 정말로 부활하셨다고 믿고, 실제로 믿어진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 부활하셨다는 일이 무슨 의미인가를 이해하고 설명하기는 실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닫혀진 작은 신비종파라면 부활을 신자끼리만 확신하는 기적으로 그 의미를 좁혀두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입니다. 부활의 의미를 살피는 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영을 이루는 교회와 성령에 대한 이해를 가지는 일과 통합니다. 깊은 의미로 전해지지 않는 부활의 주장은 그저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 부활의 본질을 시신의 소생이 사실로 일어난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오늘 복음서에서 들려지는 토마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대한 의심과 믿음을 전해준다고 읽습니다. 그러면 토마는 의심 많은 이들의 대표가 됩니다. “보지 않고도 육체적 부활을 무조건 믿는 사람이 복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며, 토마같이 의심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과 손가락으로 확인하겠다는 토마의 태도는 어쩌면 불신앙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이 읽어보면 토마가 확인한 것은 단순히 주님의 육체가 아니라 주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입니다. 두려워서 닫아 건 문을 뚫고 홀연 한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입니다. 새삼 시공간에 제한된 육체인가 아닌가를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토마가 확인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인가 하는 점입니다. 의심 없이 믿어서 복되다고 칭찬받는 믿음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주님이시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라야 우리는 이 죽음의 세상에서 참 생명이신 주님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따로 부활이 아니라 세상의 죄악에 맞서서, 세상의 죄악에 의해서, 세상의 죄악을 위해서 달리신 십자가 사랑의 주님의 부활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시신의 소생 자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만난 부활하신 주님은 생전의 모습으로 소생한 차원의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통과하여 변화된 생명입니다.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허락해주시는 주님, 그 분이 바로 부활한 예수님이십니다.
부활신앙은 시신에 일어난 기적을 믿는 일이 아닙니다. 세속의 가치로 유혹하고 죽음으로 위협하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살아계신 주님으로 깨닫고 고백하고 체험하며 의지하는 일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요한11:25-26)*

 

<강론초록2>

                          우리가 아니면 누가 부활의 증인인가 (요한 20:19-31)

 

복음성경은 명백히 부활의 사실을 전합니다. 물론 그것은 검시관이나 역사가의 현장 보고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과 제자들의 목격담과 증언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던 사건입니다. 사도들은 바로 “부활의 증인”들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이때 “부활의 증인”이란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예수님의 “시신이 다시 살아나 돌아다녔다”는 것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 “시체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퍼뜨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살아나셨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은 우리에게 혼란스런 머리가 아니라 깊은 평안을 줍니다. 그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그 깊은 평화의 힘으로 우리는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판단과 느낌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에 사로잡혀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부활의 현실을 경험하고 실천하면 세상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어떤  사람”에 관한 기괴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은 “세상이 못박아 죽인 그리스도,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부활은 복음이 덧없는 상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가운데서 생동하는 생명의 현실임을 깨닫게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복음(기쁜 소식, 구원의 능력) 자체이신 예수님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죽게 하고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따라 세상에 대하여 죽고 주님에 대하여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세례성사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제자들의 환상도 아니고 다리없는 유령도 아니고 정신없는 강시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은 이제 우리와 일치하는 영적인 몸, 신비한 지체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영적인 현존(임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에게 성체성사를 통해 살과 피로 나누어집니다. 성체를 받고 보혈을 마시며 예수님의 못자국, 창자국을 느끼십니까? 그 못자국, 창자국 선명한 몸 앞에 서며 우리는 토마처럼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세례로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한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다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합니다. “보지 않고도 굳게 믿는” 우리가 아니면 누가 참다운 부활의 증인이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