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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3월 28일 (사순21일/ 사순3주 금) 성찬례 성서말씀

 

 

2014년 3월 28일 (사순21일/ 사순3주 금) 성찬례 성서말씀

 

호세 14:2-10

2 1)이스라엘아,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너라. 못된 짓을 하다가 쓰러졌지만, 1)라틴어 성경은 여기서 14장이 시작된다.
3 모두 야훼께 돌아와 이렇게 빌어라. "비록 못된 짓은 하였지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 입술로 하느님을 찬양하겠습니다.
4 아시리아가 어찌 우리를 구하겠습니까? 우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아니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것 보고 우리 하느님이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하느님 외에 누가 고아 같은 우리에게 어버이의 정을 베풀겠습니까?"
5 이스라엘은 나를 배신하였다가 병들었으나, 나는 그 병든 마음을 고쳐주고 사랑하여 주리라. 이제 내 노여움은 다 풀렸다.
6 내가 이스라엘 위에 이슬처럼 내리면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버드나무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햇순이 새록새록 돋아 감람나무처럼 멋지고 레바논 숲처럼 향기로우리라.
8 이스라엘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며 농사 지어 곡식을 거두리라. 포도덩굴처럼 꽃이 피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유명해지리라.
9 내가 기도를 들어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브라임이 다시 우상과 무엇 때문에 상관하랴. 나는 싱싱한 전나무와도 같고 너희가 따먹을 열매가 달린 과일 나무와도 같다.
10 지혜가 있거든, 이 일을 깨달아라. 슬기가 있거든, 이 뜻을 알아라. 야훼께서 보여주신 길은 곧은 길, 죄인은 그 길에서 걸려 넘어지지만 죄없는 사람은 그 길을 따라가리라. 

 

시편 81:6-10, 13, 16

6 내가 전에는 알지 못하던 소리를 들었으니, ◯ “내가 너희 등에서 짐을 벗겨 주었고 광주리를 내던지게 하였다.
7 너희가 곤경에 빠져 부르짖을 때 살려 주었고: 폭풍 속에 숨어 너희에게 대답하였으며 ◯ 므리바 샘터에서 너희를 떠보기도 하였도다.“
8 “백성들아, 내가 타이르는 말을 들어라. ◯ 이스라엘아, 정녕 나의 말을 들어라.
9 너희는 다른 신을 모시지 말라. ◯ 이교도의 신을 예배하지 말지니라.
10 너희 하느님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나 야훼 하느님이다. ◯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 주리라.”
13 “내 백성들아, 제발 내 말을 들어다오. ◯ 이스라엘아, 나의 뜻을 따라 걸어다오.
16 그러나 내 백성은 기름진 밀가루로 먹이고 ◯ 바위에서 따낸 꿀로 배불리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마르 12:28-34

[첫째 가는 계명 (마태오 22:34-40; 루가 10:25-28)]
28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5)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5)신명 6:4-5.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31 또 둘째 가는 계명은 6)'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6)레위 19:18.
32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7)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7)신명 4:35, 6:4.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본기도> 우리의 구원이신 주 하느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어 종의 굴레를 벗기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를 죄악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1>

사순21일째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랑의 이중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하느님을 흠숭하고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고 제가 말을 시작하면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저를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받은 새계명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3:16-17)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 속에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1요한 2:15-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법으로 정의를 강요하시려면 예수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으셨겠지요. 저 하늘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징벌의 천사만 보내시면 되실 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현존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영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몸과 영으로 직접 경험하고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성찬례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온 맘과 온 몸으로 즐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도취,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자기초월, 자기희생입니다. 갑자기 사랑하기가 어려운 것 같지요? 사랑은 어렵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신앙적인 의미의 사랑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려워서 내 힘을 참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와 악과 죽음에서 해방되는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사랑을 할 수 없고, 사랑을 받을 수 없고, 사랑이 무의미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원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수난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서 당시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벌이신 여러 가지 논쟁 중에 하나입니다. 세금, 부활, 율법 등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셨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대로 살았고 예수님은 사랑으로 사셨습니다.
율법대로 라는 의미는 248가지 명령과 365가지 금령, 도합 613가지 계명을 똑같이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으로 라는 의미가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5)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5)신명 6:4-5.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 가는 계명은 6)'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6)레위 19:18.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 좋게 좋게 지내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의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됩니다.
사랑하라는 것을 억지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사랑받은 사랑만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서적이고 복음적이고 교회공동체적인 사랑의 비결이 있습니다. 제가 삼십년 넘는  세월을 기도하고 연구하고 경험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성찬례에 오셔서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은 참 복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삼아 표현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느님은 조건이 없습니다. 둘째, 하느님은 차별이 없습니다.” 이 두 가지보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핵심적인 이해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에 조건이 없다는 것을 믿으세요?
우리는 나서부터 죽기까지 이런저런 조건을 달고 살기 때문에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기 힘들어 합니다. 조건은 어디서 오는가? 세상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런저런 세상의 조건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무지무지 무거운 조건, 불가능한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 목숨, 생각, 힘 그 모든 것을 다하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일에는 우리가 채워야할 아무 조건도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조건의 은총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일이 “모든 것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차별이 없다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조건을 내가 더 충족했으니 내가 더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이 버려야할 착각입니다. 이미 하느님은 조건이 없다고 알고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위해서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다른 사람을 내가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서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 그 일이 이웃사랑입니다. 내게 친하고 잘해주는 사람과 잘 지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미신자와 이방인들도 이미 하는 일이서 칭찬할 일이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는 일, 내가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어지고 있음을 깨닫는 일, 그 일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 몸처럼 이란 말은 사람 사이의 사랑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생각으로는 인류를 한없이 사랑할 수 있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는 냉정하고 무관심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감사성찬례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조건없고 차별없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성체와 보혈로 전해집니다. 조건과 차별에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예수님을 통해 제단에 봉헌할 때 하느님의 조건없고 차별없는 사랑이 우리의 봉헌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조건없이 차별없이 하느님의 제단을 향해 나아가 성체와 보혈을 영하며 사랑의 공동체로 일치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성찬례를 통해 누리는 조건없고 차별없는 하느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를 참된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고, 우리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를,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