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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찬례 성서정과

2014년 3월 2일 (연중8주일) 성찬례 성서말씀과 강론초록

 

 

2014년 3월 2일 (연중8주일) 성찬례 성서말씀과 강론초록 

 

이사 49:8-16

8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너의 소원을 기뻐 들어 줄 때가 온다. 너를 도와 주고 구원해 줄 날이 온다. 그 날 내가 손수 빚은 너를 사이에 두고 나의 백성과 계약을 맺으리라. 그 날 너는 쑥밭이 되었던 유산을 되찾아 나라를 재건하여라.
9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일러라. '어서 나오너라.' 캄캄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자들에게 일러라. '나와 몸을 드러내어라.' 그들은 가는 길마다에서 풀을 뜯으리니 돌아 가는 길가 어디든지 뜯을 풀이 있고 사는 곳마다에서 푸른 풀로 덮인 언덕을 만나리라.
10 그들은 결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열풍에 쓰러지고 햇볕에 넘어지는 일도 없으리라. 내가 그들을 가엾게 여겨 이끌어 주고 샘이 솟는 곳으로 인도해 주리라.
11 첩첩산중에 길을 닦고 굽이굽이 큰길을 돋우어 주리라. 12 먼 곳에서 돌아 가는 이 사람들을 보아라. 북에서도 서에서도 돌아 가고 시님족의 나라에서도 돌아 간다."
13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를 질러라.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그 천대받는 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14 "'야훼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너 시온은 말하였었지.
15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16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고 너 시온의 성벽은 항상 나의 눈앞에 있다.

 

시편 131

1 주여, 내 마음은 교만하지 않으며 ◯ 내 눈은 높은 데를 보지 않습니다.
¶ 나 거창한 길을 좇지 아니하고 ◯ 주제넘게 놀라운 일을 꿈꾸지도 않습니다.
2 차라리, 내 마음 차분히, 가라앉혀 ◯ 젖 떨어진 어린 아기, 어미 품에 안긴 듯이 내 마음 평온합니다.
3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 네 희망을 주님께 두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고린 3:18-4:5

18 ○어느 누구도 자기 기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기가 세속적인 면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서에 "1)하느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제 꾀에 빠지게 하신다" 고 기록되어 있고 20 또 "2)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아신다" 고도 기록되어 있읍니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울로도 아폴로도 베드로도 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1 여러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기며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관리인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3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또 내가 나 자신을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4 나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읍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무슨 일이나 미리 앞질러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밝혀 내시고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응분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태 6:22-34

[눈은 몸의 등불(루가 11:34-36)]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며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
[하느님이냐? 재물이냐?(루가 16:13)]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라(루가 12:22-34)]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 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 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 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본기도> 주 하느님,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세상 근심과 걱정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강론초록>

                                   하느님과 재물 (마태  6:22-34)

 

온 세상을 있게 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께서 만드신 무한한 우주 가운데서도 변방의 은하계중 또 주변인 태양계 중 작은 별 지구 별 땅 속에 마련하신 금, 은, 보석 등의 광물 따위와 당신의 위엄과 영광을 겨루셔야 하는 일은 참 황당한 일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머리는 온갖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지만 쉽게 이 황당한 판단을 거두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현실 감각은 “참 사람” 다우십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통절히 갈파하십니다.

우리는 구름타고 이슬 먹는 존재가 아니라 험한 세상에서 생존의 경쟁을 이겨야 하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안전과 쾌락과 보람”을 재물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말씀은 참 어려운 요구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조금 더 냉정해집시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은 하느님과 재물이 동등한 수준의 힘이 있다거나, 하느님을 믿으면 재물은 없어도 된다거나 하는 엉뚱하고 무책임한 말씀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우리 삶에서 제일 중요한 궁극적인 가치로 생각하는가 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인생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온전히 성립한다는 통찰을 내용으로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삶과 죽음은 통째로 하나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존재와 관계, 그 둘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존재로서의 우리가 어떤 관계를 선택하고 맺고 끊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 존재는 바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자체, 또는 관계의 매듭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우리 존재를 하느님과 같은 차원으로 올려줍니다. 같은 차원이라 함은 하느님과 맞먹는 불손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길수록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우리 본분이 분명해집니다. 그 본분을 다하여 하느님과 사랑의 소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관계의 힘입니다.  하느님과의 그 “올바른 관계”를 신약성경은 “하느님의 의로우심이 우리를 구원하신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재물과 맺는 관계”를 살펴봅시다. 이미 세상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거니와 재물과 맺는 관계는 우리를 재물과 같은 차원으로 낮추어버립니다.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 하느님의 형상인 사람, 인격, 영으로서의 사람을 대합니까? 혹시 그 사람의 소유, 명성, 직업, 저택과 자가용으로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우리의 존재는 모두 재물의 일부에 불과하게 서로에게 취급됩니다. 우리 신자들은 영으로 다시 태어난 영적인 인간들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사랑과 충성을 바쳐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겠습니까? 우리 자신과 또 우리 이웃과 참으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